GloNet Church

GloNet Church 남침례회 워싱턴 글로넷 교회
GloNet Church of Greater Washington, SBC 예배시간
토요새벽 기도: 오전 6:00
주일 예배: 오후 1:30

Early morning service: Sat 6am
Sunday service: 1:30 pm

Operating as usual

11/20/2021



본문: 욥기 28:12-28 (지혜와 명철)

찬송가: 484(533)장 -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땅속 보물과 달리, 지혜와 명철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깊은 물과 바닷속에도 있지 않습니다. 지혜는 순금이나 어떤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12)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13)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14)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15)’

이토록 소중한 지혜와 명철이 있는 곳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이고 악을 떠남이 명철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23)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24)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25)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26) 그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27)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28)’

끝없는 지혜로 천하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보화로도 살 수 없는 지혜가 오직 창조주께 속해 있으며,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악을 떠나는 삶을 살아감으로 세상을 이길 참된 지혜를 얻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9/2021



본문: 욥기 28:1-11 (보물을 채굴해 내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

찬송가: 292(415)장 – 주 없이 살 수 없네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28장은 ‘지혜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혜와 관련이 깊습니다. 본문(1-11절)에서는 보물을 채취하는 과정이 상세히 기술됩니다. 은, 금, 철, 동은 인간 삶에 귀하게 쓰이는 재료들입니다. 사람은 땅속에 있는 광석을 채굴하려고 다양한 기술을 동원합니다. 땅을 파서 갱도를 만들고 절벽 같은 곳에 매달려 귀금속들을 찾아냅니다. 채굴 과정을 보면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1)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2)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3)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4)’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는 ‘매달려 흔들리느니라’라는 말에 잘 나타납니다. 이러한 인간의 지혜는 결코 동물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욥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활동들은 하나님의 활동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9)’ 산을 뒤엎는 인간의 지혜로운 활동은 하나님 능력에 견줄 만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바위산에 수로를 트거나 누수를 막기도 합니다.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10) 누수를 막아 스며 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11)’ 욥은 당시 최고로 발달된 지식을 보여 주는 채굴 기술을 통해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말합니다.

귀중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무시하지 않고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1/18/2021



본문: 욥기 27:13-2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the fate God allots to the wicked)

찬송가: 406(464)장 –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부조리가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보다 더 잘될때 신앙의 회의가 들게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인내는 무작정 막연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13)’ 욥은 악인이 맞이할 운명을 다양하게 말합니다. 악인의 자손은 번성하고 많은 재물을 쌓아도 결코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14)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15)’

악인은 부자로 누울지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두려움이 닥치고 폭풍이 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않고 던져 버리시니 사람들이 그를 보며 비웃을 것입니다. ‘부자로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19) 두려움이 물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20)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21)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 도망치려고 힘쓰리라(22)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23)’

이 땅에서 불의를 볼 때, 하나님이 악인에게 주실 심판의 분깃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음을 믿고 순종하는 의인의 삶을 사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7/2021



본문: 욥기 27:1-12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말)

찬송가: 421(210)장 – 내가 예수 믿고서

욥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결코 불의나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또한 자신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공의를 굳게 잡겠다고 합니다.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4)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5)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6)’

욥은 자신의 원수가 악인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지금은 무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원수는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7)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12)’

욥을 본받아 사람의 인정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괴롭게 하시는 분처럼 생각되는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은 내 영혼을 살리시는 전능자’라고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17/2021



본문: 욥기 26:1-14 (욥의 대답)

찬송가: 67(31)장 –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욥은 빌닷에게 힘없는 자를 잘도 도와준다고 하면서,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해 열거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1)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2)’

그분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매다시며 물에 싼 구름을 달 위에 펴십니다. 능력으로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시며 지혜로 라합과 뱀을 무찌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14)’

창조주께서 행하신 일의 한 조각조차 다 헤아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겸손으로 행하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남에게 가르친 훌륭한 내용이 곧 자신의 삶인 것처럼 기만하지 않고, 가르친 것을 실천하기에 힘쓰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5/2021



본문: 욥기 25:1-6 (빌닷의 세번째 말)

찬송가: 491(543)장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빌닷의 마지막 발언(25장)은 매우 짧습니다. 이에 반해 욥의 발언(26—31장)은 매우 깁니다. 단순하고 짧지만 빌닷의 발언에는 분명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비천한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함으로 욥의 주장을 반박하려 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1)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2)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3)’

빌닷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 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여자에게서 난 자가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달도, 별도 빛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4)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5)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6)’

빌닷의 말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만이 필요할 뿐, 그분을 향한 탄식이나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로버트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뜻에 순종하면서도 때로 탄식하고 질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내가 내뱉는 여린 탄식에도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고난 가운데도 힘을 얻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3/2021



본문: 욥기 23:1-17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찬송가: 455(507)장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욥의 말은 친구들의 말과 같이 교리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발언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 쏟아 내는 고통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절제된 언어나 정화된 표현으로 할 수 없고, 그 탄식은 반항적입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1)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2)’

욥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희망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3)’ ‘그의 처소’는 정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보좌를 가리킵니다. 욥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법적 판결을 받고자 합니다. 욥은 하나님과 만난다면 자신의 사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숨김없는 변론 후 무죄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무죄함에 대한 욥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길을 정확히 아십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8)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9)’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단련된 믿음을 갖게 될거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정확한 해석은 ‘하나님이 언제든 나를 테스트 해봐도 나는 그 시험에 합격하리라’는 욥의 확신을 표명한 것입니다. 단련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가 시험하다(test) 는 뜻입니다.

이는 욥이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어기지 않았다는 언급을 통해 확인됩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11)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12)’

욥을 본받아 인생에 고난이 찾아올 때 다른 곳에서 헤매지 않고 의롭고 진실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길 바랍니다. 고난의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 온전히 알고, 믿음의 여정 너머 영화롭게 해 주실 날들을 소망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2/2021



본문: 욥기 22:21-30 (위로가 없는 교훈)

찬송가: 80(101)장 – 천지에 있는 이름 중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복된 삶은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 교훈입니다. 엘리바스는 명령조로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평안과 복이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1)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22)’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분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말은 욥이 하나님의 교훈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전제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주어질 변화와 회복을 열거합니다. 보화나 금을 티끌로 여기고 전능자를 찾으면, 전능자가 보배가 되어 전능자로 인해 기뻐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하리라(23)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24)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25)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26)’이렇듯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하지만,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죄인으로 전제하며 회개를 강조합니다. 욥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는 서원한 바를 갚을 것이라고 합니다.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27)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28)’ 욥의 회개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을 가능하게 하고, 하나님이 욥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과 용서는 인간의 행동이 아닌 하나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신다며 겸손을 권면합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29)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30)’

이러한 엘리바스의 교훈은 멋진 설교는 될 수 있지만, 애매하게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충고를 앞세우지 않도록 겸손함을 더하는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11/11/2021



본문: 욥기 22:1-20 (엘리바스의 세번째 말)

찬송가: 365(484)장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엘리바스는 욥의 죄악이 그를 현재 고난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단정합니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5)’ 엘리바스는 욥이 저지른 악행을 확신 있게 열거합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6)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7)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8)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9)’ 공동체 안에서 마땅히 돌봐야 할 약자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진술은 욥의 실제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욥의 현재 상황을 토대로 과거 삶을 멋대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이 계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12)’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욥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13)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14)’ 욥에 따르면, 하나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셔서 구름 아래에 있는 일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왜곡해 악인들의 주장처럼 욥이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부정한 것으로 여깁니다. 여기에는 욥이 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15)’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왜곡해 인용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도 인정하실 만큼 욥이 악에서 떠난 자임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에 처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쉽게 추측하고 정죄하며 수군거렸던 모습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한지 깨닫습니다. 남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고난받는 지체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0/2021



본문: 욥기 21:17-34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찬송가: 425(217)장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성도는 불의하게 고통당하는 이의 탄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은 얼마나 자주 악인의 불빛이 꺼지며, 그가 바람에 날려가는 검불이나 겨와 같았는지 질문합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17)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같이 되었도다(18)’ 검불이나 겨는 심판과 관련됩니다. 욥은 악인이 당대에 전능자의 진노의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욥은 선악의 기준으로 분류되지 않은 다양한 삶을 열거합니다. 어떤 사람은 왕성하고 안락한 가운데 죽지만, 어떤 사람을 고통 가운데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23)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24)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25)’ 두 부류의 사람 모두 죽음 앞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 둘이 매한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26)’ 이러한 욥의 진술은 성도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하게 합니다.

잘못된 판단의 말은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해하려는 속셈이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27)’ 그는 세상일을 사람에게 질문해 누구의 말이 옳은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는 ‘악인이 재앙의 날을 위해 보존되며, 그들이 진노의 날을 향해 끌려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30절). 욥의 답변은 ‘아니다’ 입니다. 욥은 다시 ‘누가 악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그의 소행을 보응하는가?’를 질문합니다(31절). 욥은 악인의 삶에 보응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악인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교리적 차원에서 악인의 운명을 말하지만, 욥이 경험한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친구들의 위로는 욥에게 ‘헛된 것’이고, 그들의 대답은 ‘거짓’입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34)’ 세상의 잣대와 사람의 평가로 삶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를 신뢰하며 평안을 누리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09/2021



본문: 욥기 21:1-16 (경청)

찬송가: 369(487)장 –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려움을 당한 지체의 말을 잘 경청해 주기만 해도 큰 위로가 됩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먼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1)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2)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3)’

욥은 자신의 말이 누구를 향하는지 알아 달라고 호소합니다. 욥의 탄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욥은 악인이 장수하며 세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7)’ 어떤 악인의 후손은 굳건하고 집안도 평안하며 가축도 날로 늘어납니다. 그들은 스올에 내려갈지라도 전능자를 아는 것도, 주님의 도리를 아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욥은 악인의 계획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16)’ 이런 악인의 계힉이 자신과는 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도 신앙에 굳건히 서 있는 욥의 모습입니다.

악하게 사는데 잘되는 것은 무서운 형벌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더 순전한 믿음으로 사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위로를 가장해서 자기 주장과 비난을 하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고, 고난 가운데 있는 지체들의 말을 잘 경청함으로 그들을 살리는 복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11/09/2021



본문: 욥기 20:12-29 (소발의 두번째 말)

찬송가: 491(543)장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평안이 의로운 삶의 결과이고, 고난이 악한 삶의 결과라고 단정해선 안 됩니다. 소발은 악인의 삶을 음식에 비유합니다. 악을 입에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고 입천장에 물지만, 그것이 배 속에 들어가면 뱀의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토하듯 악인은 삼킨 재물을 토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12)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천장에 물고 있을지라도(13) 그의 음식이 창자 속에서 변하며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14)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15) 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16)’ 악인은 꿀과 젖이 흐르는 강들을 보지 못하고 풍요의 때에도 곤고함을 당합니다.

소발이 묘사하는 악인의 운명은 현재 욥의 상황과 일치합니다. 이전에는 많은 재물이 있었으나 현재 욥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가산과 자녀들이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그의 온전함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아무리 좋은 통찰이라도 적용이 잘못되면 무익합니다. 소발은 악인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 말합니다. 몸에 명중된 화살에 대한 언급은 자신의 처지가 하나님이 쏜 독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고 한 욥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악인은 어딜 가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어둠과 불은 그를 파멸시키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하늘과 땅도 그의 죄악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활약합니다.

소발은 결론을 제시합니다. 악인이 맞는 운명은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몫이요 유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29)’ 악인의 결말은 변경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운명입니다.

소발이 묘사한 악인의 운명은 그 자체로는 지혜자의 훌륭한 통찰이라 할 수 있으나 욥에게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과 삶을 섣불리 판단하고 말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1/06/2021



본문: 욥기 19:21-29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찬송가: 302(408)장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를 경험한 욥은 다시금 친구들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돌이켜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탁합니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이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22)’ 하나님처럼 자신을 박해하는 일을 그치라는 당부입니다.

그런 다음 강력한 희망을 피력합니다. 욥은 자신의 말(무죄함)이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소망은 점층적 방식으로 묘사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말이 책에 쓰이기를 바라더니 나중에는 철필로 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23)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24)’ ‘돌에 새긴다’는 것은 그 말을 영원히 남기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욥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항구적으로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죄함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서 굳게 의지할 대상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욥은 자신의 ‘대속자(구속자)’가 살아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25)’ 그는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육체의 몸을 입고(in my flesh, 육체로부터)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27)’ 욥은 사람들에 의해 가죽이 벗겨짐을 당하는 현실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의 대속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고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욥은 친구들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살아 계신 구속자 하나님은 끝내 이 땅에 공정한 심판을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28)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29)’

억울하고 답답해 내 삶이 끝나는 것같이 느껴질 때라도 대속자이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변호하시고 마침내 구원하실 것을 신뢰하며 찬양하기 원합니다. 찢기고 상한 내 마음을 아시고 싸매시는 그 신실한 사랑에 매여 승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05/2021



욥기 19:1-20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찬송가: 370(455)장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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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말은 상대방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합니다. ‘짓부수기’라는 표현에서 그들의 말이 욥을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열 번이나 욥을 학대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열번은 횟수가 많음을 의미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1)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2)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3)’

악인은 스스로 쳐 놓은 그물에 걸린다고 하지만, 욥은 자신이 강하고 무자비한 핍박자에게 포획된 동물 갇다며 탄식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6)’ 욥은 이를 통해 자신의 현실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을 다양한 비유로 진술합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해도 응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길을 봉쇄하시며, 그의 영광을 빼앗아 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성을 포위하고 함락하는 군대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욥은 형제와 지인뿐만 아니라 이웃과 친척으로부터 소외를 경험합니다. 육체의 질병보다 마음을 나눌 진실한 친구가 없는 총체적 소외 상황이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엄하게 느껴지지만,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날에도 결코 시선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부모와 같은 사랑을 발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삶을 삼키는 고난에도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승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03/2021



본문: 욥기 18:1-21 (빌닷의 두 번째 말)

찬송가: 381(425)장 – 나 캄캄한 밤 죄의 길에

빌닷은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이라고 욥을 공격합니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4)’ 욥을 찢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욥 자신의 분노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악인이 필연적으로 맞이할 운명을 묘사합니다. 첫째, 악인의 빛은 사라진다고 합니다(5-6절). 빛은 번영과 생명의 상징입니다. 악인의 빛이 사라진다는 것은 악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빌닷은 욥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그의 최후가 악인처럼 죽음으로 끝날 것이라고 공격합니다.

둘째, 악인은 자기 꾀에 빠져 넘어진다고 합니다(7-10절). 악인은 다른 사람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고 덫을 놓지만, 그 함정과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맙니다.

셋째, 악인은 공포와 재앙과 징벌을 경험한다고 합니다(11-13절). 악인은 결코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넷째, 악인의 삶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14-20절).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빌닷의 진술은 결국 욥의 고난당하는 현실에 대한 정죄와 비난으로 귀결됩니다. 이러한 빌닷의 정죄와 비난을 보면서 내 생각과 다르다고, 내 충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남을 비난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부로 단정 지어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안을 채워 사랑의 말을 전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11/02/2021



본문: 욥기 17:6-16 (고난과 믿음사이)

찬송가: 543(342)장 – 어려운 일 당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당하는 모욕은 견디기 힘든 고통 중 하나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속담거리가 되게 하셔서, 자신이 얼굴에 침 밷음을 당하고 남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그의 눈과 육체는 쇠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6)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7)’

욥은 지혜자의 격언을 인용해 ‘정직한 사람은 이 일에 놀라고 죄 없는 사람은 위선자들 때문에 격동할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자기 길을 갈 것이요,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8-9절).

욥의 친구 가운데는 이 교훈을 보여주는 지혜자가 없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돌이켜 참된 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요청합니다.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다시 찾을 수 없느니라(10)’ 비난하거나 적대시하지 말고 동정하고 위로하라고 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희망보다 절망을 묵상하기 쉽습니다. 욥은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토로합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11)’ 증인과 중보자가 하늘에 계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이 중재해 주시길 바라던 것과 정반대 모습입니다(16:19-21).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 그의 날들은 다 지나가 버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마음의 소원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그가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경험하는지 집과 가족의 은유에 잘 드러납니다.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13)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14)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15)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16)’ 희망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희망과 미래는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그럼에도 욥의 발언에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절망을 경험하는 만큼 삶에 대한 욕구와 희망도 간절합니다. 죽음을 호소할 만큼 깊은 고난에 좌절해도 그 고난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을 소망하며 신실하신 주님 말씀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는 복된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1/01/2021



본문: 욥기 16:18- 17:5 (나의 증인이요 중보자이신 하나님)

찬송가: 435(492)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믿음의 사람은 탄식 가운데서도 그의 시선을 하나님께 둡니다.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18)’ 땅을 향해 욥 자신의 피를 가리지 말고 자신의 부르짖음이 머물 곳이 없게 하라는 말은 ‘아벨의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울부짖는다)’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창4:10).

욥은 하나님을 자신을 공격하는 ‘적대자’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변호해 주실 ‘증인’과 ‘중보자’로 인식합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9)’ 하나님 외에는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해 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다시금 하나님께 자신의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토로합니다. 힘이 소진된 그는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느낍니다. 조롱하는 자들이 여전히 함께 있어 그의 괴로움을 더합니다. 이제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뿐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담보물(보증)’이 되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3)’ 하나님은 현재 그의 고난에 대한 원인자요 유일한 해결자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의 수모를 기꺼이 견디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로 고통을 당할지라도 내 인생에 영원한 보증이 되신 주님만 붙들고 승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11/01/2021



본문: 욥기 16:1-17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

찬송가: 88장 – 내 진정 사모하는

아무리 좋은 말도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공감의 대가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위로할 때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공감과 배려가 결여된 말은 상처만 줄 뿐입니다.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는커녕 오히려 수모와 상처를 받습니다. 이에 욥은 친구들을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고 평합니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1)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2)’

그는 친구들의 말을 ‘헛된 말(바람의 말들)’로 묘사하면서 이전에 그들이 ‘바람’ 비유로 자신의 말을 비난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온갖 말을 쏟아 내도 그의 고통은 그대로 입니다. 욥이 기대하고 소망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욥은 현실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는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하고 자신의 온 집안을 황폐하게 만든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욥을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 또한 적대적으로 변합니다. 욥은 무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뺨을 치며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사냥감을 찾아 추적하는 맹수나 사냥꾼과도 같습니다. 그 결과 욥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자신의 손에는 포학이 없고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17)’ 하나님의 진노가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욥과 같이 의로움을 잃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내 주위에 고통 당하는 이웃에게 인간적 위로는 내려놓고 말씀으로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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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Glonet. This is Jim Frye from Olney Baptist Church. We will be collecting shoeboxes for Operation Christmas Child again this year. If you would like to prepare a shoe box, you can drop it off at the church by November 15. This year you can also build a shoebox online at the website below. Stay well. Jim
본문: 신명기 12:20-28 (피 식용 금지에 관한 말씀) 찬송가: 449(377)장 – 예수 따라가며 하나님의 백성은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는 노예로 살았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는 유랑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정복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정복자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방법은 일상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은 고기를 먹는 문제 특별히 고기를 먹을때 피는 먹지 말라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생명인 피는 먹지 않고 땅에 쏟아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에 함부로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23)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같이 땅에 쏟으라(24)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25)’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금지 명령만 준수한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금지 규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과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28)’ 거룩하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고 불순종하는 것이 악입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의로운 백성에게 하나님은 대대손손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릴 때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의 소견은 미련없이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대로 철저히 순종해 사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본문: 신명기 12:8-14 (가나안에서의 예배) 찬송가: 446(500)장 – 주 음성 외에는 사람이 어렸을 적에는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숙했을 때는 어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었을 때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실수가 용납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생활했던 그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까지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8)’ 거기에서는 분명한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고 모세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장하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비록 고단하고 당장 손해처럼 보여도 굳건히 인내하며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아무 장소에서나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실 한 장소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번제 등 희생 제사를 비롯해 십일조, 낙헌 예물, 서원물, 거제물, 초태생 등을 드릴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실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11)’ 성숙한 예배자는 장소만이 아니라 구성원에 관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과만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과 함께 예배드립니다.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12)’ 세상은 끼리끼리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나와 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 중 가장 비천한 노비와 가난한 레위인을 예배 자리로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명하십니다. 교회는 신분, 인종, 지위, 남녀노소에 차별을 두지 말고 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나의 소견은 미련 없이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겸손히 예배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신명기 9:6-8 (목이 곧은 백성) 찬송가: 449(377)장 – 예수 따라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6)’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기 전부터 악하게 원망했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으며, 구원의 은혜를 잊은 채 지난달 종살이했던 애굽으로 귀환하려는 반역을 꾀했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내내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반역했습니다.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는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7)’ 목이 곧은 백성인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아침마다 이렇게 QT를 하지만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도 조금만 지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나의 정욕대로 살려합니다.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죄의 노예로 지내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의 고집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수 있을까요?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한순간도 올바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께 나의 연약함을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갖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 되시면, 어리석고 둔하고 강퍅했던 마음이 정결해지고 미련한 마음이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삶의 중심에 두게 됩니다. 광야40년이라는 고난을 겪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늘 거역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축복이고 능력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